저자 : 에이미 E. 허먼
출판사 : 청림출판
미술사가이자 변호사인 작가가 자신이 진행한 강의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작품을 창조해내는 예술가들의
의도, 관점, 창작 과정들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우리들이 각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접목시켜 보다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에 접근하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디자인을 공부한 나에게도 꽤 도움이 되었지만,
예술에는 전혀 문외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인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아, 그래, 맞아’ 라고 생각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문제를 직시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 자신의 문제이든, 우리가 속한 사회의 문제이든 말이다.
<자화상> 속의 닐은 제왕처럼 꼿꼿이 앉아
비록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 위로 늙어서 처진
가슴이 늘어져 있을지언정 반항하듯이 정면을
응시하며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기를 진실로 이해하려면 이처럼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을 솔직하게 분석해야 한다.
—— p. 48
<자화상 Self-Portrait>, 앨리스 닐, 1980, 캔버스에 유채
나 역시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핑계로, 나에 대해 솔직히 남에게 드러내는 것도 잘 못하지만, 더욱 문제였던 것은
나 스스로 나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것이다.
20대에는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멀리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주어진 상황을 살아냈을 뿐이다.
30대에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 키우느라 나 자신에 대한 생각조차 해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아이들이 좀 자라고 보니 나는 40대가 되었고, 이제 정말 진지하게 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되었다. 그런데 두렵기도 했다. 지금의 나를 마주하는 일 말이다. 10년을 사회에서 떠나 있었고,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고, 내가 그걸 따라가는 게 버거울 것 같았으니 말이다.
많은 망설임과 방황 끝에 결국 내가 나로 다시 뭔가를 해보기 위해서는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내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 이렇다 하게 이룬 것도 없고 당장은 버는 돈도
없다. 뼈 아픈 현실이지만 이것저것 탓하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에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해 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서 닐의 <자화상>이라는 작품이 크게 와 닿았다. 아름다운 몸은 아니지만 그게 닐 자신이다.
그 몸에는 닐이 지나온 세월이 묻어 있다. 자신 있게 정면을 응시한 그 그림이 나에게 용기를 주는 듯하다.
그렇지. 여태 살아오면서 느낀 거지만,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우리 자신과 남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측면이라고 해서 외면하거나 피할 수는 없다. —– p.149
얼마 전, 한강 작가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듣고 많은 것을 느꼈다.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고, 피해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 문제가 없어지지는
않더라, 그 문제는 거기 그대로 있더라면서 결국은 그 문제를 풀어내기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피하고 싶어한다. 그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하는 일은 시작하기 전부터 스트레스일 것이다.
특히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보고 있자면, 직시하고 들여다 보자니 내 마음이 너무 괴롭다.
어떤 일은 분노를 일으키고, 어떤 일은 너무 큰 슬픔이다. 더군다나 사회 문제는 개인인 나에게 불가항력적인
문제들로 느껴진다. 그래서 종종 흘려듣고 관심 갖지 않는 쪽을 택해왔다. 일희일비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어찌할 수도 없는데.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들을 직시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외면했던 그 문제들이 언젠가는 나의 문제, 우리 가정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 때 아무도 내가 당한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 다들 그저 스쳐지나간다면..?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없다.
둘째는 ‘그냥 하라’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는 과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폴 사이먼(Paul Simon)의 앨범 <스트레인저 두 스트레인저 Stranger to Stranger>를 비롯해 작품 수백 점을
제작한 화가 척 클로스(Chuck Close)는 자기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핵심은 영감이 떠오르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클로스는 창작 과정에 관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힌다.
“최고의 아이디어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모든 것이 활동 자체에서 자라고, 작업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고
생각지도 못한 다른 문이 열립니다.” —– p. 237
특히 뭔가를 창작하는 일, 글을 쓰거나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디자인을 하거나, 음악을 작곡하는 일들은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해서 꼭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 원하는 것, 알맞은 것 그 무엇이든 떠오르지 않으면 일의
진행이 어렵다. 그래도 일단 시작해야 한단다. 그런데 나도 매우 동의한다.
단지, 내 경험들을 돌아봤을 때 어려운 부분은 그것이다. 시작했는데, 너무 형편없는 것들만 생각나는 것이다.
내가 상상하는 결과물은 엄청 근사한 것인데 말이다.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게 내가 살아오면서 얻은 교훈이다.
시작이니 형편없는 게 당연하다. 처음부터 근사한 게 나오기를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다. 참고 해야 한다.
현재 별로인 이것이 과연 나아질까? 라는 의심이 들어도 참고 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
그 조금씩 나아짐이 모여서 나중에 근사한 것이 되곤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어려운가? 그렇다.
국가에 폭행당해 뇌출혈을 일으키거나 영구히 활동 금지 처분을 받으면 힘들까? 보통은 그렇다.
해결책이 꼭 완벽해야 할까? 아니다.
해결책을 지금 당장 내야 할까? 그렇다.
언제든 화판 앞에서 다시 시도할 수 있지만, 이제는 정말로 뭔가를 해야 한다. 그냥. 하라. —– p. 248
그렇다. 그냥 해야 한다. 처음부터 근사한 것이 나오기를 바라지 말고,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내가 봐도 이상하고
별로여도, 시작하고 그냥 해야 한다. 하기 전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사소한 것이 모여서 대단한 것이 된다. 그게 성공의 진리라고 숏츠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 책에서 여러 가지 놀라운 예술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품들에 숨어 있는 중요한 요소들을 알게 되고,
거기에 숨은 작가의 의도가 이런 거였구나 알게 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방식, 어떤 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배울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